드라마 역적, 우리에게 말하려고 했던 것은?

드라마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이 막을 내렸다. 결국 왕을 끌어내리는 해피엔딩으로 드라마는 끝이났고, 홍길동은 살아서 다음의 왕들을 지켜보겠다는 말을 남긴다. 홍첨지들의 활동은 왕을 갈아엎으면서 끝난 것이 아닌 앞으로도 백성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난다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의미 심장한 대사 또한 남겼다. 그래서일까. 마지막화를 보고 나니 드라마 역적이 어떠한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는지를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아래의 이야기는 그저 필자가 생각한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홍첨지의 시대상과 2017년의 시대상

드라마의 시대상과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대한민국의 시대상은 무척이나 닮아있다. 드라마를 천천히 감상하며 즐겼던 시청자라면 역적의 시대상이 지금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조선의 노비제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비제란 이름의 제도만 없을 뿐, 보이지 않는 계급은 존재하고 성공이란 이름 아래 어떻게든 출세해보고자 공부를 하고, 돈을 악착같이 벌고자 한다. 비슷한 것이 노비 중 으뜸이 된다고 하더라도 신분은 노비일뿐,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스스로의 형편이 조금 나아진다 하더라도 가진자들과 같은 위치를 꿈꿀뿐 실제 가진자들처럼 될 수는 없다.


양반과 왕, 가진자들은 나라의 대다수인 백성들을 무시하고 억압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이는 일까지 서슴치 않는다. 현실에서는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등 약자에 대한 차별과 착취가 번번히 일어난다. 죽이지만 못할 뿐이지 가진 놈들이 더하다는 말은 지금이나 역적의 시대나 같다. 이러한 드라마의 시대상은 지금의 시대상과 무척이나 닮아있다고 느꼈다.



아기장수, 홍길동 그리고 홍첨지

그렇다면 아기장수는 무엇이고 홍길동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원래 홍길동전의 홍길동은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고 신분의 차이를 타파하고자 하는 혁명적인 사상을 실현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본래의 홍길동에게 투영한 사상이 드라마의 홍길동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느껴진다.


역적 처음에는 아기장수라는 존재에 초점이 맞춰진다. 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신분의 차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왕 혹은 양반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존재로. 하지만 살아남는다면 아주 강한 장수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스토리가 진행된다.


홍길동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드라마를 볼 떄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캐릭터에 의해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힘을 갖게 되는 판타지 같은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홍길동, 아기장수가 가진 힘은 위기의 순간에서 홍길동이 살아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였을 뿐,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메인 소재는 아니었다.


극 중에서 언급하듯 아기장수임을 알려주기 위해 힘이 존재할 뿐이지, 아기장수의 능력은 강한 힘이 아니었다. 내가 느낀 아기장수의 능력은 물리적 힘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하나로 모아낼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내는 장면은 드라마 곳곳에서 나온다.


그 힘을 올바른 방향으로, 백성을 위한 방향으로 사용하는 인물이 홍길동, 그리고 홍길동의 사상에 함께하고 바꿔내는 조직을 홍첨지라 보여진다.




왕을 끌어내린 백성

홍길동과 홍첨지 무리는 왕을 끌어내린다. 하지만 홍길동이 왕을 끌어내린 것은 아니다.


역적에서 왕은 향주목이란 마을을 반란 세력으로 규정하고 제거하기 위해 군사를 계속해서 보낸다. 홍첨지 무리는 향주목을 끝까지 지켜내고, 왕을 허겁지겁 도망가게끔 만들어낸다. 향주목에서의 일이 급속도로 조선 전체에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많은 백성들이 홍첨지와 함께 하겠다는 벽보를 붙이기 시작했다.


이에 홍길동은 "왕을 끌어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한다.


왕을 끌어내릴 수 있었던 힘은 홍길동, 아기장수의 힘이 아닌 백성의 힘이었음을 홍길동의 입을 통해 말한 것이다. 이는 위에서 말했듯 2017년 대한민국의 모습과 유사하다.


박근혜 4년 동안, 아니 이명박부터 시작된 9년 동안의 억압이 국정농단 사건을 통해 폭발했고 그 힘은 촛불이라는 매개체를 사용해 광화문에 모였다. 홍첨지를 지금의 언어로 표현하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싸워온 유가족이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두고 소녀상을 지켜왔던 대학생이며, 밀양 송전탑 주민들이며, 제주 강정의 주민들이며, 사드배치 문제로 대치중인 성주의 군민들일 것이다. 각자의 이야기로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온 사람들이 홍첨지 아닐까 싶다.


싸움을 이끌어온 사람들이 박근혜를 탄핵시킨 것은 아니지만 국민들의 목소리를 모을 수 있는 윤활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왕을 끌어내린 홍첨지처럼 말이다.



백성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라

부패한 왕과 양반들은 노비를 마치 물건인 듯 여기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눈을 지지고, 발 뒷굼치를 잘라내는 등의 비인간적인 행태를 서슴치 않았다. 홍길동은 이런 문제를 왕이 해결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왕에게 직접 백성들을 보살펴 달라며 요청한다.


그러나 홍길동에게 돌아온 것은 노비 주제에 건방진 짓을 한다며 홍길동의 몸을 부순다. 이때 아기장수의 힘을 일시적으로 잃는다. 죽어가던 홍길동은 더욱 더 고통받는 백성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기장수의 숙명을 받아드리고 다시 부활한다.


이후에 홍길동은 왕에게 백성들을 울게 만든 왕과 양반들이 지금의 홍길동을 만들었다며,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라고 말하지만 왕은 점점 더 미치기 시작한다. 결국 쫓겨난 왕은 백성의 비난을 받으며 귀향을 가게 되고, 그 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 때 홍길동의 말이 인상적이다. 왕으로 즉위할 때는 백성들의 박수와 격려를 받았지만,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고 결국 백성들의 비난을 받으며 쫓겨난 것이 참으로 아쉽다는 이야기였다. 마치 박근혜가 당선되었을 때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라고 할까.


어디서든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 말한 홍길동. 초인적인 능력이라도 있는 듯 지켜보겠다 이야기하지만 홍길동은 별 능력이 없다. 오히려 입을 타고 전해지는 백성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 정도의 능력만 있을 뿐이다.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다가도 백성들이 괴롭힘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홍첨지들은 그 곳으로 향한다. 즉, 홍길동과 홍첨지의 능력은 백성들에 의해 발현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또 한 번 하게 된다.



마무리하며

그렇다면 2017년 지금의 홍길동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도 역적의 스토리처럼 백성들의 힘을 뭉쳐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또한 더욱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우리들의 홍길동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촛불이 홍길동 아니었을까. 작년부터 시작했던 촛불이 탄핵 이후까지 쭉 이어져왔고, 대략 연인원 1600~1700만 명 정도의 수가 참가했다고 한다. 우리들의 목소리를 한 곳에 모으고 현실화하는 역할을 촛불이 하지 않았을까.


드라마가 끝나면서 홍첨지들이 한 말이 있다.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그 말은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통하는 말이다. 문재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됬다고 모든 것을 바꿔줄거란 기대는 없다. 그저 우리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사람을 잠시 올렸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홍첨지들이 했던 말처럼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들 또한 지금부터 시작이란 말을 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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